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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일반

'세 번째 올림픽' 김준호 "완벽한 레이스가 목표"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김준호(27)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출전 각오를 전했다. 김준호는 1일 중국 베이징 내셔널 스케이트 오벌에서 중국 입국 후 첫 훈련을 소화했다. 차민규 등 다른 단거리 대표들은 아직 입국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준호는 일찌감치 발걸음을 결전을 무대로 옮겼다. 그는 "여유 있게 준비하고 싶었다. 얼음에도 빨리 적응할 필요가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김준호는 베이징 대회에서 개인 '세 번째' 올림픽에 나선다. 2014 소치 대회에서는 21위, 4년 전 평창 대회에서는 12위에 올랐다. 메달 기대주로 볼 순 없지만, 경험이 많은 선수다. 김준호는 "평창 대회에서 실수를 한 기억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실수는 훈련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더 집중적으로 훈련에 임했다"라고 했다. 베이징 대회 목표는 후회 없는 레이스를 펼치는 것이다. 김준호는 "앞선 두 차례 올림픽에서 완벽한 레이스를 펼치지 못했다. 그것만 해도 후회는 없을 것 같다"라고 했다. 사명감도 있다. 그동안 한국 남자 단거리 빙속은 올림픽에서 경쟁력을 보여줬다. 2010 벤쿠버 대회에서는 모태범이 금메달을 획득했고, 평창 대회에서는 차민규가 '깜짝' 은메달을 땄다. 김민석은 베이징 대회에서 차민규와 함께 메달 '명맥'을 이어갈 주자로 나선다. 그는 "500m에서 올림픽 메달이 계속 나와서 부담도 있지만, (단거리 스피드스케이팅이) 가장 재밌는 종목이니까, 국민들에게 인상 경기를 보여주고 싶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베이징=안희수 기자 an.heesoo@joongang.co.kr 2022.02.02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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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속 '메달 기대주' 김민석 "4년 전보다 성장, 메달 노린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출전하는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 선수들이 결전 무대에서 첫 훈련을 소화했다. 메달 기대주 김민석(23·성남시청)은 자신감이 넘친다. 김민석은 1일 중국 베이징 내셔널 스피드스케이팅 오벌에서 훈련을 소화했다. 오전에 예정된 훈련은 여독을 고려해, 오후로 연기됐다. 김민석은 동료 김준호, 박성현과 함께 컨디션을 점검했다. 김민석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컨디션을 점검했다. 첫날 스케이팅이 괜찮았던 것 같다. 첫 경기인 1500m까지 1주일이 남았는데, 준비를 잘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며 웃었다. 빙상 종목은 빙질이 항상 변수로 떠오른다. 김민석은 "(4년 전) 평창 올림픽 강릉 오벌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빙상 대표팀 관계자, 다른 나라 선수들도 내셔널 스피드스케이팅 오벌에 대해 너무 무르지도 딱딱하지도 않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김민석은 평창 대회 남자 1500m에서 동메달을 따낸 중·장거리 간판이다.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 서양 선수들이 장악하고 있던 중거리 종목에서 경쟁력을 보여줬다. 이승훈, 정재원과 나선 팀 추월에서도 은메달을 따냈다. 호성적을 거둔 빙상장과 비슷한 빙질을 갖춘 무대에서 다시 한번 메달을 노린다. 김민석도 여느 선수들처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변수라는 악재를 만났다. 국제대회 출전이 줄었고, 훈련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사이 다른 나라 경쟁 선수들의 기량은 더 좋아졌다. 하지만 4년 전보다 기량이 향상됐다고 자부한다. 그는 "웨이트트레이닝과 (레이스) 훈련을 병행하면서 힘이 더 붙었다. 전반적으로 근육이 붙었고, 레이스 초반 스피드도 향상됐다. 구체적인 목표를 묻는 말에 김민석은 "당연히 출전하는 모든 종목에서 메달을 따고 싶다. 하지만 부담이 커지면 멘털이 흔들리기 때문에 욕심내지 않고 메달을 한 개라고 따겠다는 마음으로 나설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베이징=안희수 기자 an.heesoo@joongang.co.kr 2022.02.01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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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이상화' 김민선 "상화 언니 응원 큰 힘, 메달 노린다"

'포스트 이상화' 김민선(23·의정부시청)이 2020 베이징 동계올림픽 메달 획득을 자신했다. 김민선은 내달 4일 개막하는 베이징 올림픽에서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와 1000m에 출전한다. 그는 지난해 12월 캐나다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4차 월드컵 여자 500m 디비전A에서 37초205로 개인 최고 기록을 세우며 상승세를 탔다. 지난 13일 열린 제48회 전국남녀 스프린트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에서도 500m와 1000m 모두 우승하며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 김민선은 올림픽 500m 2연패(2010 벤쿠버·2014 소치 대회)를 달성한 '빙속 여제' 이상화(은퇴)의 후계자로 기대받고 있다. 2015년 ISU 2차 월드컵 디비전B(2부 리그)에서 1위를 차지하며 주목받았고, 2017년 '인터내셔널 폴 클래식' 500m에서는 37초78을 기록, 이상화가 보유했던 종전 주니어 세계 기록(37초81)을 0.03초 앞당기며 성장세를 보여줬다. 이상화도 김민선을 콕 짚어 후계자로 꼽았다. 4년 전 평창 올림픽에서는 허리 부상 탓에 공동 16위(38초53)에 그쳤다. 김민선은 "첫 올림픽 출전 이후 메달 획득이라는 꿈이 더 커졌다"며 이를 악물었다. 이후 열린 국제대회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며 베이징 대회를 향해 나아갔다. 김민선은 제2의 이상화라는 수식어를 동력으로 삼고 있다. 그는 "(이)상화 언니의 뒤를 이어줄 선수로 봐주시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부족한 부문이 많지만, 언니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각오를 전했다. 김민선의 막판 스퍼트는 이상화와 견줄 수 있을 만큼 높은 평가를 받는다. 보완점은 스타트. 김민선도 잘 알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을 준비하며 가장 많이 훈련한 부분이다. 김민선은 "스타트를 보완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찾았다. 다른 외적인 부문은 문제는 없다. 베이징 대회는 개인 두 번째 올림픽이다. 남은 기간 완벽한 준비를 위해 노력하겠다. 목표는 당연히 메달을 따는 것이다. 최선을 다하면 해낼 수 있는 목표라고 생각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름 앞으로 다가온 결전을 앞두고 '우상' 이상화와 자주 연락하며 멘털을 관리하고 있다. 김민선은 "앞서 열린 월드컵을 치르면서도 많은 조언을 구했다. 상화 언니는 항상 '잘하고 있으니 자신 있게 레이스를 펼치는 게 중요하다'라며 자신감을 준다. 언니도 방송사 해설위원을 맡았다. 성장한 모습을 보여드릴 것"이라며 각오를 다졌다. 안희수 기자 2022.01.19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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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빙속 대표팀, 첫 4대륙 대회 메달 싹쓸이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이 초대 4대륙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대회에서 메달을 싹쓸이 했다. 4대륙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대회는 국제빙상경기연맹(ISU)가 올해부터 처음 시작하는 대회로, 유럽을 제외한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4개 대륙 국가들이 참가하는 대회다. ISU는 그동안 피겨스케이팅에서 4대륙 선수권대회를 치렀지만, 올해부터 스피드스케이팅과 쇼트트랙까지 확대했다. 이번 대회는 미국 밀워키 페팃 내셔널 아이스센터에서 열렸다. 2일(한국시간) 대회 둘째 날에는 김민석(성남시청)과 엄천호(스포츠토토)가 각각 남자 1500m와 남자 매스스타트에서 나란히 우승을 차지했다. 김민석은 남자 1500m에서 1분44초567의 기록으로 캐나다 제스 뉴펠드(1분45초990)를 1.42초 차이로 누르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민석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1500m에서 아시아 최초로 동메달을 목에 건 한국 빙속 중거리 에이스다. 엄천호는 남자 매스스타트에서 엄천호는 8분31초940, 스프린트포인트 64점으로 우승했다. 후배 정재원(한국체대은 스프린트포인트 41점으로 은메달을 땄다. 여자 매스스타트에선 여자 장거리 간판 김보름(강원도청)이 은메달, 박지우(한국체대)가 동메달을 획득했다. 박지우는 여자 1500m에서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전날 김준호(강원도청)와 김민선(의정부시청)은 각각 남녀 500m에서 나란히 우승했다. 김준호는 남자부 500m에서 34초592를 기록, 캐나다의 알스 보이스베르 라크루아(34초730)를 0.132초 차로 제치고 우승했다. 여자 500m에서는 '포스트 이상화'로 손꼽히는 김민선이 38초416의 기록으로 캐나다의 브루클린 맥두걸(38초533)을 0.117초 차로 따돌리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함께 출전한 김현영(성남시청)은 38초558을 기록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남자 팀스프린트에서는 김준호, 김진수(강원도청), 차민규가 호흡을 맞춰1분21초08을 기록, 중국(1분21초35)을 0.27초 따로 제치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김준호는 500m 금메달에 이어 2관왕에 올랐다. 김현영, 김민지, 김민선이 출전한 여자 대표팀은 캐나다(1분29초82)에 0.88초 뒤진 1분30초70으로 은메달을 땄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2020.02.02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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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호-김민선, 스피드스케이팅 사대륙 선수권 남녀 500m 초대 챔피언 등극

한국 남녀 스피드스케이팅의 단거리 간판스타들이 올해 처음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사대륙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대회에서 500m 초대 챔피언 자리를 휩쓸었다.단거리의 강자 김준호(강원도청)와 김민선(의정부시청)은 1일(한국시간) 미국 밀워키의 페팃 내셔널 아이스 센터에서 열린 ISU 사대륙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대회 2020에서 각각 남녀 500m 우승을 차지했다.남자부의 김준호는 34초592의 기록으로 캐나다의 알스 보이스베르 라크루아(34초730)를 0.132초 차로 제치고 챔피언에 올랐다. 이 기록은 미첼 위트모어(미국)이 가지고 있던 페팃 내셔널 아이스 센터의 트랙 레코드(34초90)를 앞지른 새로운 기록이기도 하다. 함께 출전한 차민규(의정부시청)는 35초289를 기록하며 8위에 이름을 올렸다.여자부에선 김민선이 38초416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 캐나다의 브루클린 맥두걸(38초533)을 0.117초 차로 따돌리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함께 출전한 김현영(성남시청)은 38초558의 기록으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민지(한국체대)는 39초526으로 12위에 올랐다.단체전으로 치러지는 남녀부 팀스프린트에서는 김준호, 김진수(강원도청), 차민규가 호흡을 맞춘 남자 대표팀이 1분21초08을 기록, 중국(1분21초35)을 0.27초 따로 제치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김준호는 500m 금메달에 이어 2관왕에 올랐다.김현영, 김민지, 김민선이 출전한 여자 대표팀도 캐나다(1분29초82)에 0.88초 뒤진 1분30초70으로 결승선을 통과해 은메달을 추가했다. 김민선은 500m 금메달에 이어 팀스프린트 은메달을 따냈고, 김현영도 500m 동메달에 이어 팀스프린트 은메달로 나란히 '멀티 메달'의 기쁨을 만끽했다.한편 여자 3000m에 나선 박지우(한국체대)는 4분13초225로 5위, 남자 5000m에 출전한 정재원(한국체대·6분24초754)과 엄천호(스포츠토토·6분25초454)는 각각 4, 5위를 기록했다. 이번 사대륙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대회는 ISU가 올해부터 처음 시작하는 대회로, 유럽을 제외한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4개 대륙 국가들이 참가하는 대회다.김희선 기자 kim.heeseon@joongang.co.kr 2020.02.01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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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퀴 철녀’ 나아름 “도쿄 찍고 유럽 다시 가겠다”

2020년 도쿄올림픽의 해다. 올림픽 메달의 산실 진천선수촌의 열기도 뜨겁다. 지난 연말 선수촌 벨로드롬에서 만난 한국 사이클 여자 장거리 간판 나아름(30)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특히 나아름은 올림픽 이후 사이클 본고장인 유럽 진출을 노린다.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할 중요한 이유다. 나아름은 지난 10년간 한국 사이클 여자 장거리에서 독주했다. 2009년 3관왕을 시작으로 전국체전에서만 40개가 넘는 금메달을 따냈다. 아시아권에서도 기량은 독보적이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의 유일한 4관왕(여자 개인도로·도로독주·단체추발·매디슨)이었다. 그해 봄 발가락을 다쳐 두 달을 쉬고도 거둔 성과다. 나아름은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란 생각을 했다. 열심히 준비했더니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웃었다. 나아름은 지난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이탈리아 사이클 여자프로팀 알레-치폴리니에 입단했다. 세계 정상급 팀이다. 나아름은 “전부터 유럽에서 뛰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런데 (알레-치폴리니) 팀 관계자가 ‘계약한 팀 있냐’며 인스타그램 DM(다이렉트 메시지)으로 연락해왔다.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다”고 소개했다. 한국 선수가 유럽 팀과 계약한 건 처음이다. 2000년대 초반 한국 축구 선수들이 유럽 무대에 뛰어든 것과 비견될 만하다. 유럽에서 사이클 도로 경기의 인기는 대단하다. ‘투르 드 프랑스’, ‘지로 디탈리아’ 등 인기 대회에 출전하는 스타 선수는 연봉과 광고 수입 등으로 연간 수십억원을 번다. 여자 종목 인기는 남자보다 조금 덜해도 간판급 선수는 억대 연봉을 받는다. 나아름은 "팀에서 태극기가 들어간 유니폼을 준비해줘 기뻤다"고 했다. 그는 "음식은 가리지 않는 편이라 잘 적응했다. 다만 휴식이 없어 체력적으로 힘들었다"고 했다. 막상 시작했지만 쉽지 않았다. 소속팀 상주시청, 이탈리아 알레-치폴리니 팀, 국가대표팀까지 세 가지 일정을 동시에 소화해야 했다. 두 차례 유럽에 건너가 10여개 대회에 출전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출전하는 국내 일정에 비해 엄청난 강행군이다. 그 와중에도 유럽 데뷔전에서 13위에 오르고, 전국체전에선 3관왕을 차지했다. 지난해 월드컵 3차 대회에선 이주미(32), 강현경(25), 장수지(23)와 함께 사상 처음으로 단체추발 메달(3위)을 땄다. 나아름은 "정말 힘들었다. 그래도 유럽에서 지내면서 '유럽 선수들과 내가 다를 게 없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나아름은 “유럽에 60일 머물렀는데 그중 30일을 출전했다. 장시간 귀국비행 뒤 국내 대회에 나갔다. 발목과 어깨 통증이 심해졌고, 밸런스도 흐트러졌다”고 털어놨다. 김형일 중장거리 대표팀 감독은 "아름이는 국내와 클럽 대회를 병행하면서 국가대표로 월드컵도 나갔다. 통증이 심해 진통제를 먹기도 했다. 사이클에만 집중하면서 엄청난 의지로 이겨냈다"고 말했다. 힘들어도 도전하는 건 개척자가 되고 싶어서다. 나아름은 “솔직히 전국체전만 나가도 적지 않은 연봉을 받을 수 있다. 유럽팀에서도 처음에는 많이 받지 못한다. 그래도 세계 최고 선수들과 겨루며 ‘동양인도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나아름은 올해 국내에서만 뛰기로 했다. 마지막 출전일지 모르는 올림픽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다. 이번 올림픽은 출전권 확보가 어려웠다. 지역별 쿼터가 사라졌다. 대륙선수권 우승팀과 월드컵 랭킹 포인트 상위 팀만 올림픽에 나갈 수 있다. 한국이 확보한 올림픽 티켓은 나아름의 출전이 유력한 여자 도로 종목 뿐이다. 기대되는 종목은 월드컵 랭킹 2위 이혜진의 여자 경륜, 그리고 나아름이 포함된 단체추발이다. 사이클 단체추발은 스피드스케이팅 팀 추월과 비슷한 종목이다. 네 선수가 함께 달리면서 상대의 마지막 주자를 추월하면 이긴다. 추월하지 못하면 결승선을 세 번째로 통과하는 선수 기록으로 승부를 낸다. 단체추발에서 8위 안에 들면 옴니엄(총 6종목을 치러 점수를 합산하는 경기)과 매디슨(두 선수가 번갈아 달려 얻은 포인트를 합산해 겨루는 경기)까지 티켓 3장을 한꺼번에 확보한다. 나아름은 "사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내 역할을 다 하지 못했다. 운도 좋았고, 동료들의 도움으로 메달을 따낸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한국 여자 팀 랭킹은 10위다. 다음 달 세계선수권에 걸린 포인트가 많아 역전을 노릴 수 있다. 김형일 감독은 “현재 8, 9위 팀(폴란드, 프랑스)과 차이가 크지 않아 역전을 노린다”고 말했다. 만약 단체추발까지 따내면 나아름은 네 종목까지 출전할 수 있다. 나아름은 “말은 하지 않아도 모두 이번이 기회라는 걸 알고 있다. 팀워크가 좋아 세계선수권에서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고 말했다. 나아름은 ("2012년) 런던(도로 13위)에선 겁 없이 달렸고, (2016년) 리우(30위)에선 오르막을 잘 달리고도 내리막에서 추월당했다. 마음이 약해졌던 것 같다”며 “도쿄가 마지막일 수도 있다. 죽을 각오로 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탈리아 팀에서 '다시 올 수 있다오면 오라'고 했다. 올림픽이 끝난 뒤 본격적인 유럽 무대 도전을 해보려고 한다. 국내에도 기량은 뛰어나지만 어떻게 나가야 하는지 모르는 선수들이 있다. 앞장서서 후배들의 길을 열어주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진천=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2020.01.02 08:42
스포츠일반

[창간 50 특별기획]한국스포츠 50년, 슈퍼스타 50인, 환희의 50신

일간스포츠는 한국스포츠 반세기를 함께 했다.1969년 창간해부터 2019년까지 50년 동안 한국 스포츠에는 수많은 스타가 등장했다. 그중 시대를 풍미한 독보적인 슈퍼스타들이 존재했다. 일간스포츠와 스타들을 돌아보면 한국 스포츠의 역사가 보인다. 스타들이 만들어낸 환희의 장면들을 통해 역사를 되돌아보고자 한다.일간스포츠는 중앙일보-일간스포츠의 스포츠 담당 기자들을 통해 50년의 기간을 10년 단위로 나눠 각 세대별 최고스타 10인을 선정했다. 이어 한국 스포츠전문가들의 자문 등을 두루 구해 총 50인을 확정했다. 지도자와 행정가는 제외했다. 오직 당시 현역으로 뛴 선수로만 구성했으며 또 각 시대별 같은 종목 선수들은 최대한 배제했다.50년을 수놓은 영광의 슈퍼스타 50인을 소개한다. <1969~1979 : 배고팠던 시절 국민들을 위로한 영웅>1960년, 70년대 한국은 힘들고 배고팠던 시절이었다. 국민들이 위로를 받을 수 있었던 거의 유일했던 쉼터가 스포츠였다. -김일(프로레슬링)김일은 1960년대부터 70년대 중반까지 한국과 일본에서 박치기왕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린 스타였다.박치기를 특기로 극동 헤비급 챔피언·올아시아 헤비급 챔피언·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오르는 등 활약을 펼쳤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 프로레슬링 전설로 위용을 떨쳤다. 국민들은 김일의 경기가 열리는 날에 흑백 TV 앞에 모여 열렬히 응원했다. 김일의 움직임으로 인해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었다. 김일은 배고팠던 시절 조국의 영웅이었다. -홍수환(복싱)4전5기의 신화. 두 체급에 걸쳐 세계 타이틀을 거머쥐며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한 복싱 선수다.197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WBA(세계복싱협회) 밴텀급 타이틀매치에서 세계 정상에 섰다. 당시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는 한 마디는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또 1977년 파나마에서 열린 WBA 주니어페더급 타이틀결정전에서 헥토르 카라스키야를 상대로 2회 4번 다운당한 뒤 3회에 KO승을 거뒀다. 4전5기 신화. 국민들은 홍수환의 투혼을 보며 힘겨운 삶을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양정모(레슬링)1976년 8월 1일. 한국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이 나왔다. 주인공은 양정모였다.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62kg급에서 양정모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광복 후 참가한 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이 등장하는 순간. 한국은 첫 금메달 소식에 열광했다. 당시 한국은 일요일. 신문이 발행되지 않는 휴일이어서 전국에 호외가 깔렸다. 양정모는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과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까지 2회 연속으로 금메달을 차지하며 최고의 레슬링 영웅으로 군림했다. -조오련(수영)'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은 한국 수영의 아버지다.1970년 방콕아시안게임 자유영 400m와 1500m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한국스포츠 역사상 최초의 아시안게임 2관왕이 탄생했다. 무명의 18세 고교생이었던 그는 자연스럽게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했다. 이어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에서도 400m, 1500m 2관왕에 올랐다. 조오련은 한국신기록 33개, 대회신기록 17개를 갈아치웠다. 한국 수영은 그렇게 조오련으로부터 출발했다. -김진호(양궁)양궁 최강국 한국. 그 시작은 고교생 신궁 김진호였다. 1970년대 세계양궁은 김진호의 시대였다.그는 1979년 베를린 세계양궁선수권에서 5관왕을 차지하며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18세 고교생이었던 김진호를 위해 카퍼레이드 행사까지 열며 국민들은 뜨겁게 환영했다. 이어 김진호는 1983년 LA세계선수권에서 또 다시 5관왕에 올랐다. 여자 신궁 계보의 시조. 한국 양국의 위대함을 세계무대에 처음으로 이름을 알린 전설이다. -이에리사(탁구)한국 탁구의 어머니라 불리는 이에리사다.그는 1973년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에서 단체전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구기 종목 사상 처음으로 세계대회에서 우승을 일궈낸 것이다. 정현숙과 박미라 그리고 이에리사가 팀을 이뤘고, 19세 막내 이에리사가 에이스였다. 우승을 결정짓는 마지막 스매싱도 이에리사의 손에서 나왔다. 이 쾌거는 '사라예보의 기적'이라 불렸고, 한국에는 탁구 열풍이 불었다. 전국의 탁구장은 발디딜 틈이 없었다. -백옥자(육상)1970년대 '아시아의 마녀'라 불리며 아시아 육상을 지배한 선수가 있었다. 바로 백옥자다.그는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포환던지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대회 신기록을 작성하며 한국 여자 선수 최초의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렸다. 그의 행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에서 16m28cm, 아시아 신기록을 세우며 한국 육상 최초로 아시안게임 2연패를 달성했다. 육상 불모지 한국에서 등장한 영웅이었다. -김응용(야구)프로야구가 출범하기 전 한국야구 최고의 선수는 김응용이었다.1966년부터 1972년까지 한일은행 소속으로 한국 야구를 주도한 주인공이다. 김응용이 있기에 한일은행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그는 홈런황 3회를 차지하는 등 실업야구 최고의 거포였다. 통산 타율 3할7리를 기록했다. 또 김응용은 국가대표 4번 타자였다. 1971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에서 일본을 누르고 우승을 이끌었다. 아시아선수권 2번째 우승. 김응용 이름 앞에 '영원한 국가대표 4번 타자'라는 이름표가 붙은 이유다. -신동파(농구)1960년대와 70년대 한국 농구를 이끌었던 슈퍼스타 신동파다.그는 1967년 중소기업은행에 입단해 1974년 은퇴할 때까지 3만 득점 이상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는 라이벌이 없었다. 그의 위상은 해외까지 퍼졌다. 1969년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 결승 필리핀과 경기에서 50점을 넣으며 한국의 우승을 이끌었다. 신동파의 활약에 반한 필리핀에 신동파 신도롬이 일어나기도 했다. 1970년 유고슬라비아 세계선수권에서 평균 30득점을 넘기며 득점왕에 올랐고,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조혜정(배구)'작은 새'라 불린 한국 여자배구의 전설 조혜정이다.그는 165cm의 단신이었지만 엄청난 점프와 파워로 한국 배구의 간판 공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조혜정이 이끄는 배구대표팀은 3위 결정전에서 헝가리를 3-1로 꺾고 동메달을 차지했다. 한국 구기 종목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메달이 탄생하는 명장면. 올림픽과 함께 조혜정은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과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에서 연속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 여자배구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1979~1989 : 구기종목에서 등장한 불세출의 스타 그리고 1988년 서울올림픽>이 시대에는 유독 구기종목에서 불세출의 스타들이 등장했다. 축구와 야구 그리고 농구와 배구까지 역사상 최고의 선수들이 이름을 날렸다. 또 1988년 서울올림픽의 감동이 찾아왔다. -차범근(축구)1970년대와 80년대, 한국 축구에는 불멸의 슈퍼스타가 등장한다. 바로 차범근이다.차범근은 한국 선수 최초로 유럽 무대를 밟았다. 세계 최고의 프로축구리그로 꼽혔던 독일 분데스리가. 그는 다름슈타트를 시작으로 프랑크푸르트, 레버쿠젠 등에서 활약했다. 차붐은 UEFA(유럽축구연맹) 컵 우승을 2회를 이끌며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또 당시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골 신기록(98골)도 세웠다. 한국 대표팀에서도 136경기 출장, 58골로 최다출전, 최다골 기록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영웅이자, 아시아 역대 최고의 선수로 꼽히고 있다. -선동렬(야구)야구에는 국보급 투수가 탄생했다. 한국야구는 선동렬 시대에 돌입했다.프로야구가 출범한 뒤 1985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한 선동렬. 이후 프로야구는 해태 왕조가 지배했다. 그 중심에 '무등산 폭격기' 선동렬이 있었다. 3년 연속 투수 3관왕(다승·승률·평균자책점) 정규리그 MVP 3회·골든글러브 6회·7년 연속 평균자책점 1위 등을 기록하는 등 해태를 6번 우승으로 이끌었다. 통산 146승, 132세이브, 방어율 1.20이다.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는 평가에 이견이 없다. -최동원(야구)선동렬이 등장하기 전 프로야구의 유일한 전설, 최동원이다.그는 1984년 다승왕·탈삼진왕·골든글러브에 이어 MVP까지 수상하며 프로야구를 평정했다. 그해 7전4선승제의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만나 홀로 4승을 따내며 롯데 자이언츠를 사상 첫 정상에 올려놨다. 강속구와 폭포수 커브를 장착한 무쇠팔 최동원이었다. 이후 1985년 20승·1986년 19승·1987년 14승까지 해마다 10승 이상을 기록하며 최고 투수로 명성을 이어갔다. 선동렬과 라이벌 구도는 프로야구 최대 빅이슈였다. -이충희(농구)신동파의 뒤를 이은 최고의 슈터, 이충희의 등장은 한국 농구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농구대잔치 출범 후 3시즌 동안 두 차례 팀 우승과 MVP를 동시에 석권했다. 현대전자의 상징. 한 경기 69점을 기록하며 팬들을 열광시켰고, 최초로 4000득점 돌파 그리고 5시즌 연속 득점왕 등 슛도사를 막을 자 없었다. 그의 영향력은 대표팀까지 번졌고, 19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 1986년 스페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홀로 45점을 성공시키며 세계적 주목을 받기도 했다. -강만수(배구)타고난 힘과 기술 그리고 센스까지, 모든 것을 다 갖춘 최고의 공격수. 강만수를 정의하는 말이다.1970년대와 80년대를 풍미한, 배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 공격수다. 1972년 17세의 나이로 국가대표에 발탁됐다. 한국은 강만수로 뜨거웠다. 한국 구기종목 사상 최연소 국가대표였기 때문이다. 이후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 우승과 1979년 멕시코유니버시아드 우승을 이끌며 '아시아의 거포'로 불렸다. 컴퓨터 세터 김호철과 최고의 호흡을 자랑하기도 했다. 1984년 LA올림픽에서는 5위를 기록했다. -현정화(탁구)한국에서 처음 개최된 올림픽. 1988년 서울올림픽 최고 스타는 현정화였다.한국 여자탁구의 상징.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을 시작으로 1987년 뉴델리세계선수권 복식 금메달을 차지했다. 조국에서 열리는 올림픽 메달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기대는 현실이 됐다. 서울올림픽 복식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선수로 최초로 2010년 국제탁구협회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현정화라는 이름으로 한국 여자탁구의 황금기가 시작됐다. 그가 은퇴한 뒤 한국 여자탁구는 단 한 번도 세계 정상에 서지 못했다. -김수녕(양궁)한국 양궁 역사상 최고의 신궁, 단연 김수녕이다.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 실력, 카리스마 그리고 냉정함까지, 김수녕 그 자체가 한국 양궁의 얼굴이었다. 1987년 16세의 나이로 국가대표에 발탁됐고,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개인전과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최초의 올림픽 2관왕 탄생. 이어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은메달을 품었다. 한국 최초의 올림픽 2회 연속 금메달의 주인공도 김수녕이다. 세계신기록을 무려 35회나 달성했고, 한국 역대 올림픽 메달 횟수(6개) 공동 1위다. -손미나(핸드볼)우생순의 시작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었다.1984년 LA올림픽에서 여자 핸드볼대표팀은 은메달을 차지했고, 4년 뒤 조국에서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소련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21-19로 승리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구기 종목 역사상 첫 번째 금메달은 그렇게 나왔다. 금메달 멤버는 총 15명. 그중 골키퍼로 한국 골문을 든든히 지켰고, 서울올림픽 개회식에서 대표로 선서를 한 손미나가 국민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있다. -이만기(씨름)예능에 나오는 친근한 옆집 아저씨가 아니다. 이만기는 한국 씨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였다.이만기는 1980년대 씨름 황금기를 이끈 스타였다. 1983년 첫 천하장사를 차지한 뒤 총 10회 정상에 올랐다. 역대 1위. 또 백두장사 19회, 한라장사 7회를 차지했다. 기술씨름을 도입한 최초의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압도적 실력과 준수한 외모로 국민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만기의 경기를 보기 위해 대통령이 경기 시간을 늦췄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이만기가 수놓은 씨름은 한국 최고 인기스포츠였다. -장재근(육상)한국 육상의 전설이 등장했다. 한국 육상 역대 최고의 스프린터, 장재근의 등장이다.그는 20세의 나이로 19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에 출전해 200m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시안게임 최초 육상 트랙 금메달이었다. 육상 천재 장재근에 한국은 열광했다. 그는 이어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도 200m 금메달을 따내며 아시안게임 2연패에 성공한다. 1985년 자카르타아시아선수권에서 장재근은 20초41이라는 한국신기록을 작성했다. 이 기록은 이후 33년 동안 한국신기록으로 남아있었다. <1989~1999 : IMF로 실의에 빠진 국민들 희망을 안긴 영웅>1997년 한국에 불어닥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실의와 고통에 빠진 국민들에게 용기를 안긴 스포츠 스타들이 있었다. 이들의 존재가 곧 희망이자 위로였다. -박찬호(야구)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 그는 IMF 위기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며 한국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긴 영웅이었다.1994년 미국 메이저리그 LA다저스에 입단한 박찬호는 1997년 14승을 거두며 주목을 받았고, 1998년 15승을 수확하며 정상급 선수로 성장했다. 2000년 18승을 달성하며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으로 꼽혔다. 메이저리그 통산 124승. 아시아 최다승이다. 또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금메달, 2006년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동메달 등을 이끌며 야구대표팀에서도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했다. -박세리(골프)IMF 위기의 시절 국민들을 위로했던 또 한 명의 슈퍼스타, 박세리다.미국 LPGA 개척자. 1998년 LPGA 무대에 뛰어들었고, 데뷔 4개월 만에 맥도널드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US오픈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며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했다. 특히 US오픈 연장 18번 홀에서 양말을 벗고 맨발로 연못에 들어가 샷을 한 장면은 한국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위기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박세리의 모습에 국민들은 힘을 얻었다. LPGA 25승으로 한국인 최다 우승자 역시 박세리다. -황영조(마라톤)'몬주익의 영웅'의 등장으로 한국 육상은 다시 한 번 세계적으로 위용을 떨쳤다.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황영조는 몬주익 언덕에서 모리시타 고이치를 따돌린 뒤 홀로 몬주익 스타디움에 들어섰다. 그리고 두 팔을 힘차게 들고 골인했다. 한국 정부 수립 이후 육상 첫 올림픽 금메달. 1936년 베를린올림픽 손기정의 금메달 이후 첫 번째 금메달이었다. 이후 황영조는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며 다시 한 번 포효했고, 1994년 미국 보스턴마라톤에서는 당시 한국 최고 기록인 2분8초09를 기록했다. -심권호(레슬링)심권호라는 이름은 세계 최고라는 의미다.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48kg급 금메달을 목에 건 뒤 1995년 프라하세계선수권, 1996년 애틀란타올림픽까지 정상을 차지했다. 48kg급이 폐지되자 54kg급으로 체중을 늘려 다시 한 번 똑같은 코스를 밟았다. 1998년 예블레세계선수권·1998년 방콕아시안게임·2000년 시드니올림픽까지 금메달을 일궈냈다. 하계올림픽 최초 올림픽 2연패, 한국 올림픽 사상 첫 두 체급 석권 그리고 세계 레승링 최초 두 체급 그랜드슬램 달성. 기록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전기영(유도)한국 역사에서 가장 뛰어는 유도선수를 꼽으라면 단연 전기영이다.유도 천재, 업어치기의 달인으로 불린 그는 20세의 나이로 참가한 1993년 해밀턴세계선수권 78kg급에서 우승했다. 한국 역대 최연소로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95년 지바세계선수권에서는 86kg급에 도전해 금메달을 차지, 두 체급을 석권했다. 1996년 애틀란타올림픽에서는 1회전을 제외하고 모두 한판승으로 이기며 정상에 섰다. 1997년 파리세계선수권에서도 1위에 오르며 세계선수권 3연패를 달성했다. -박주봉(배드민턴)배드민턴의 교과서 박주봉. 그는 한국을 넘어 세계 배드민턴의 전설이었다.1980년 17세의 나이에 대표팀에 발탁됐고, 1982년 덴마크오픈에서 이근구와 한 조로 역대 최연소로 국제대회 우승을 일궈냈다. 1985년 캘거리세계선수권 우승·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3관왕·1989년 자카르타세계선수권 금메달·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 금메달·1991년 코펜하겐세계선수권 1위 등 승승장구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차지했다. 1996년 '배드민턴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허버트 스칠 상을 수상했다. -전이경(쇼트트랙)'쇼트트랙 여제'라 불리는 유일한 선수, 전이경이다. 그보다 압도적인 선수는 없었다.1988년 12세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로 발탁된 그는 1994년 릴레함메르올림픽 1000m와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석권, 2관왕에 올랐다. 이어 1995년 요빅세계선수권을 시작으로 1996년 헤이그, 1997년 나가노까지 개인종합 3연패를 일궈냈다. 1998년 나가노올림픽에서도 1000m와 3000m 계주를 석권하며 한국 여자 최초로 올림픽 2회 연속 2관왕에 오르는 영광을 품었다. -허재(농구)농구대통령이 당선됐다. 농구 9단이라 불리며 한국 농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선수, 허재다.중앙대 1학년 시절 농구대잔치에 나서 평균 24득점을 올리며 신인왕을 수상했다. 이어 기아자동차에 입단하자 기아 왕조가 구축됐다. 기아의 에이스로 농구대잔치 5연패 등 7회 우승을 일궈냈다. 3번 MVP를 수상했고, 베스트 5에 6회 포함됐다. 압도적인 실력과 카리스마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스타. 국가대표팀에서도 에이스였다. 1990년 아르헨티나세계선수권 이집트전에서 62점을 넣으며 세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홍명보(축구)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다.그는 1992년 포항제철 아톰즈에 입단해 K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신인 최초로 MVP를 수상하는 영광을 품었다. 이후 일본 J리그에서 진출하며 베스트 11에 선정되는 등 활약을 이어갔다. 한국 대표팀 전설이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을 시작으로 1994년 미국월드컵,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 이어 2002년 한·일월드컵까지 아시아 최초로 4회 연속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다. 홍명보는 A매치 136경기 출전으로 한국 최다 출장 기록을 가지고 있다. -강호동(씨름)이만기를 1인자에서 내려앉히고 새로운 1인자로 등극한 괴물, 강호동이다.이만기의 은퇴는 곧 강호동이라는 새로운 황제의 등극과 연결된다. 1989년 일양약품에 입단한 20세 강호동은 첫 백두장사 타이틀을 차지했다. 당시 4강에서 이만기와 첫 공식전에서 맞붙어 2-0으로 승리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1990년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천하장사에 올라섰다. 이후 백두장사 7회, 천하장사 5회를 차지했다. 최단기간 천하장하 5회라는 신기록을 가지고 있다. 강호동이 은퇴하자 씨름의 황금기도 끝났다. <1999~2009 : 불모지에서 태어난 올림픽 스타 그리고 붉은물결 2002년>불모지 한국. 그동안 한국에서 약했던 종목에서 슈퍼스타들이 등장해 행복했던 시기다. 또 한국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영광이었던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가 탄생했다. -박태환(수영)박태환의 등장. 한국스포츠는 새로운 역사를 맞이했다.수영 불모지에서 세계 1등이 탄생했다. 15세 나이로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 참가했던 그는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을 차지했다. 2007년 멜버른세계선수권 남자 자유형 400m 금메달을 따더니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아시아 최초로 400m 정상에 섰다. 200m에서도 은메달.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3관왕, 2011년 상하이세계선수권 금메달 등 세계 정상급 기량을 이어갔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400m, 200m에서 은메달을 땄다. -장미란(역도)한국 역도 역사의 새로운 신화, 장미란이 썼다.2002년 국가대표에 발탁된 그는 2005년 카타르세계선수권부터 2006년 산토도밍고·2007년 치앙마이·2009년 고양까지 4연패를 일궈내며 세계 역도계에 독주체제를 구축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 압권이었다. 여자 +75kg급 경기에서 인상 140 kg·용상 186 kg·합계 326kg을 기록,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며 우승했다. 이 과정에서 세계신기록을 두 번이나 경신했고, 2위와 격차가 무려 49kg이나 났다. 압도적인 우승, 압도적인 선수였다. -진종오(사격)한국은 세계최고의 권총 사수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한국에는 진종오가 있다.2008년 베이징올림픽 50m 권총에서 금메달을 딴 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2연패를 달성하더니,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세계 사격 역사상 최초로 3연패를 일궈냈다. 2010년 뮌헨·2014년 그라나다·2018년 창원 등 세계선수권에서도 연이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올림픽에서 금메달 4개, 은메달 2개로 김수녕과 함께 역대 한국인 올림픽 최다 메달 공동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유승민(탁구)한국 탁구의 마지막 자존심, 유승민이다.2000년 18세의 나이로 국가대표에 발탁된 유승민은 2004년 이집트오픈에서 우승하며 기대를 받았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남자탁구 단식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며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16년 만에 금메달이 나왔다. 이 금메달은 21세기 올림픽에서 유일한 비중국인 탁구 금메달이었다. 이후 2012년 런던올림픽 단체전 은메달, 2018년 베이징올림픽 단체전 동메달 등을 목에 걸며 한국 탁구의 간판 역할을 했다. 유승민 이후 한국은 단 한 번도 올림픽 정상에 서지 못했다. -이승엽(야구)국민타자. 이승엽이 아니면 붙을 수 없는 이름이다.한국을 넘어 아시아 최고의 홈런왕. 1999년 54홈런을 기록하며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50홈런을 돌파했다. 2003년에는 한국 역대 최다인 56홈런을 때렸다. KBO 통산 465개의 홈런으로 역대 1위에 오른 이도 이승엽이다. 타점(1495점) 득점(1351점) 등도 1위다. 홈런왕 5회·MVP 5회·타점왕 4회·골든글러브 10회 등 기록이 이승엽의 위대함을 말해주고 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과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주역이기도 하다. -안현수(쇼트트랙)쇼트트랙 여제가 전이경이라면 황제는 안현수다.많은 선수들이 세계 정상에 선 경험이 있지만 안현수보다 압도적인 선수는 없었다. 쇼트트랙 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선수. 16세에 국가대표에 발탁된 그는 2003년 바르샤바부터 2004년 예테보리·2005년 베이징·2006년 미니애폴리스·2007년 밀라노까지 세계 최초로 세계선수권 5연패를 달성했다. 2006년 토리노올림픽에서 1000m·1500m·5000m 계주까지 3관왕을 차지했다. 500m 동메달도 추가했다. 한국 올림픽 역사상 단일 대회 최다 메달 신기록이다. -김세진(배구)한국 배구에 등장한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스타, 김세진이다.1995년 실업배구 삼성화재의 창단멤버로 합류해 삼성화재 왕조를 이끈 스타였다. 김세진이 활약하던 시기 배구는 폭발적 인기를 받았다. 김세진을 앞세운 삼성화재는 리그 9연패를 일궈냈다. 배구대표팀에서도 에이스였다. 2001년 창원아시아배구선수권과 2003년 톈진아시아배구선수권 우승을 이끌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도 목에 걸었다. 특히 1994년 월드리그에서 베스트 6에 오르며 월드스타라는 칭호를 얻었다. -서장훈(농구)한국 농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빅맨, 단연 서장훈이다.1994년 연세대를 대학 최초로 농구대잔치 우승을 이끌 때부터 그는 국보급 센터였다. 공격과 수비 외곽능력까지 갖춘 전천후 선수. 1998년 청주SK 입단 후 서울 삼성·전주 KCC·인천 전자랜드 등에서 활약했다. 1999년 리바운드 상 수상. 프로농구 사상 외국인 선수를 제치고 리바운드 왕을 차지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프로통산 1만3231득점·5235리바운드 기록, 역대 1위.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야오밍이 이끄는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최경주(골프)한국 남자 골프의 세계화를 이끈 선구자, 최경주다.1999년 한국 남자 선수 최초로 PGA투어 자격을 획득했다. 2001년부터 꾸준한 성적을 내기 시작했고, 2002년 5월 뉴올리언즈 콤팩 클래식에서 한국 첫 PGA 투어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 탬파베이 클래식에서 2승을 챙겼다. 이후 AT&T 내셔널 등 PGA에서 6회 우승을 더 차지하며 통산 8회 우승을 기록했다. 한국 남자 선수로는 최고의 기록이다. 잡초 골퍼라 불리며 열악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로 한국 골프의 자존심을 높인 영웅이다. -박지성(축구)한국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환희,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그 중심에는 두개의 심장을 가진 박지성이 있었다.한국은 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 등을 꺾고 아시아 역대 최고의 성적인 4강에 진출했다. 거리는 붉은물결르 뒤덮혔고, 선수들은 국민영웅으로 등극했다. 그중 핵심은 박지성. 그는 2005년 잉글랜드 최고 명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유니폼을 입었다. 한국 최초의 잉글랜드 진출. 이때부터 맨유는 국민클럽이 됐다. 박지성은 맨유에서 리그 우승 4회 등 총 13개의 우승트로피를 수집했다. <2009~2019 : 동계스포츠의 비상 그리고 10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하는 천재들>과거 한국의 동계스포츠는 쇼트트랙으로 모두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달랐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다른 종목에서 세계 1등이 탄생했다. 프로스포츠에서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하는 천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김연아(피겨)한국 동계스포츠의 역사는 김연아가 있을 때와 없을 때로 나눌 수 있다. 피겨스케이팅 불모지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 김연아가 나온 건 기적이다.김연아는 한국을 넘어 세계 피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힌다. 하이라이트는 2010년 밴쿠버올림픽. 김연아는 쇼트 78.50점, 프리 150.06점 총합 228.56점으로 압도적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 올림픽·세계선수권·4대륙 선수권·그랑프리 파이널 등을 모두 제패하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최초의 선수로 역사에 기록됐다. 11번 세계신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이상화(스피드스케이팅)'빙속여제' 이상화를 빼놓고 한국 동계스포츠를 논할 수 없다.2010년 밴쿠버올림픽 여자 500m에서 76초09로 우승, 한국 여자 최초로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 74초70, 올림픽 신기록으로 2연패에 성공한다.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은메달을 기록하며 아시아 선수 최초로 3개 대회 연속 메달을 딴 선수로 남았다. 2013년 미국 솔트레이크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나온 36초36의 세계신기록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깨뜨리지 못하고 있다. -윤성빈(스켈레톤)한국을 넘어 아시아 최초로 올림픽 썰매 종목 금메달을 딴 주인공, 윤성빈이다.한국 스켈레톤의 간판인 그는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압도적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평창올림픽 남자 스켈레톤 1∼4차 레이스에서 무려 3차례나 트랙 신기록을 갈아치우면서 1∼4차 합계 3분20초55로 정상을 차지했다. 한국과 아시아 동계스포츠의 새로운 역사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스켈레톤 불모지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윤성빈. 그의 헬멧에 그려진 아이언맨처럼 그는 한국 스포츠의 영웅이었다. -양학선(체조)한국 체조의 새로운 역사, 도마의 신이 창조했다. 양학선이다.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에 이어 2011년 도쿄세계선수권 우승으로 큰 기대를 받았던 양학선.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신의 경지를 보여준다. 지구에서 단 한 명만 할 수 있는 최고난위도 기술 '양학선'을 앞세워 도마 금메달을 차지했다. 16.533점. 압도적 우승이었다. 한국 체조 역사상 첫 번째 올림픽 금메달은 그렇게 탄생했다. 이후 2013년 앤트워프 세계선수권에서도 우승하며 세계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다. -황경선(태권도)태권도 종주국 한국. 수많은 선수가 세계 정상에 섰다. 그중 가장 많은 최초의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이는 '태권여제' 황경선이다.18세 나이로 2004년 아테네올림픽 여자 67kg에 나서 동메달을 차지한 그는 2005년 마드리드세계선수권과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그리고 2007년 베이징세계선수권까지 재패한다. 남은 건 올림픽.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멈추지 않고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태권도 최초의 올림픽 2연패. 최초의 올림픽 3회 연속 진출을 일궈냈다. -박인비(골프)미국 LPGA에는 한국 여성 열풍이 불었다. 그 열풍 최선봉에 자리를 잡은 스타, 박인비다.골프 여제의 2008년 US오픈 우승. 박세리의 최연소 우승 기록을 깨면서 정상을 차지했다. US오픈 총 2회 우승 등 메이저대회에서 7회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최고 기록이다. LPGA 통산 19승으로 박세리에 이은 2위다. 56주 연속 세계랭킹 1위를 유지했고, 4개 메이저대회 타이틀을 모두 거머쥐는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아시아 최초로 달성하기도 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금메달 역시 박인비 품에 안겼다. -정현(테니스)2018년 1월, 한국에 테니스 열풍이 불었다. 그 바람은 정현이 일으켰다.정현은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대회 4강에 진출하는 역사를 썼다. 2018년 호주오픈 1~3라운드에서 미샤 즈베레프·다닐 메드베데프·알렉산더 즈베레프를 연이어 꺾으며 기대를 받았다. 16강 상대는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인 노박 조코비치.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정현이 조코비치를 꺾고 8강에 진출한 것. 한국에 정현 신드롬이 일어났다. 8강에서 테니스 샌드그렌마저 넘으며 4강에 올라섰다. 4강에서 로저 페더러를 만나 부상으로 기권했다. -김연경(배구)한국 여자배구에 이렇게 독보적인 선수는 없었다. 김연경이다.흥국생명에 입단한 2005년. 득점상·공격상·서브상·신인왕·정규리그 MVP·챔피언결정전 MVP까지 싹쓸이한다. 얼마나 압도적인 선수인 지 알 수 있는 기록. 이후 3년 연속 정규리그 MVP에 올랐다. 2009년 일본 JT마베라스 유니폼을 입은 뒤 2011년 터키 페네르바체로 이적했고,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거듭난다. 가는 팀마다 우승으로 이끌면서 가치는 올라갔다. 2012년 런던올림픽 4강,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 등 배구대표팀에서도 기둥이었다. -류현진(야구)21세기 한국야구 최고의 선수라 불리는 그의 이름은 류현진이다.2006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자마자 다승·탈삼진·평균자책점 1위로 신인왕과 MVP를 동시석권한 프로야구 최초의 선수가 됐다. 2013년 미국 메이저리그 LA다저스로 이적한 첫해 14승 올리며 기대를 충족시켰다. 이후 꾸준함을 보이다 2019년 평균자책점 전체 1위를 기록, 올스타전 선발로 나서는 등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한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 등 야구대표팀 역사와도 함께 했다. -손흥민(축구)지금 한국 축구는 '손흥민의 시대'다.2010년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를 시작으로 레버쿠젠을 지나 2015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으로 이적했다. 세계 톱클래스 공격수로 거듭났다. 특히 2018~2019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경기에서 3골을 넣으며 우승후보 맨체스터 시티를 침몰시켰다.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손흥민을 앞세운 토트넘은 최초로 결승에 올랐다. 축구대표팀에서도 에이스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 독일전 승리 주인공.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도 품었다. 최용재·김지한 기자 2019.09.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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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NOW] 코리아 하우스엔 없고 체코·네덜란드 하우스엔 있는 것

"깜짝이야, 저기 무슨 일 났대요?"올림픽 선수촌·미디어촌이 밀집해 있는 강원도 강릉의 유천택지지구, 길거리를 지나던 한 시민이 깜짝 놀라 근처에 있던 기자에게 물었다. 각양각색의 아이스하키 유니폼과 대형 국기 망토를 두른 외국인들이 내지르는 떠나갈 듯한 함성소리와 박수갈채 때문이었다. 소음(?)의 진원지는 선수촌 건너편에 위치한 체코 하우스 '체코나라'.17일 열린 2018 평창겨울올림픽 남자 아이스하키 A조 조별리그 2차전에서 세계랭킹 6위 체코가 '최강' 캐나다를 꺾는 파란을 일으키자, 체코하우스에 모여 응원을 펼치던 체코인들이 흥분의 함성을 내지른 까닭이다. 환한 대낮에 열린 경기였지만 체코하우스 내부에는 꽤 많은 외국인들이 모여 아이스하키를 지켜보고 있었고, 체코의 승리에 쉴 새 없이 맥주를 들이키며 행복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수도 없이 리플레이를 돌려보며 축배를 드는 소리가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체코 하우스는 2018 평창겨울올림픽 참가국인 체코가 설치한 올림픽 내셔널 하우스(국가 홍보관)다. 원래 내셔널 하우스는 올림픽에 참가하는 나라들이 자국 선수단을 보호하고 지원할 목적으로 지어진다. 이번 평창겨울올림픽에도 개최국 한국을 비롯해 약 15개국이 평창과 강릉 일대에 내셔널 하우스를 열었다. 내셔널 하우스에는 선수들과 선수단 관계자들을 위한 다양한 공간이 기본으로 제공된다. 하지만 '스포츠 외교'의 영향력이 커진 최근에는 양상이 조금 바뀌었다. '국가 브랜드 홍보'라는 목적이 하나 더 추가됐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내셔널 하우스를 꾸려 자국의 문화를 전세계인들에게 알리는 '전진 기지'이자, 전통과 문화 소개 및 음식, 특산물까지 경험해볼 수 있게 하는 '미니 대사관'인 셈이다. 평창에 꾸린 오스트리아 하우스, 용평의 스위스 하우스 등이 대표적이다.강릉 올림픽 파크 내에 위치한 코리아 하우스도 올림픽 기간 중 '미니 대사관'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한국관광홍보존을 꾸려 전통문화, 한류, 관광 등 인기 콘텐츠를 ICT를 통해 체험할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했고 사진과 파노라마 등으로 한국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게끔 했다. 또 복주머니 접기, 민화 그리기, 한글 캘리그라피, 체질에 맞는 전통차 시음 등 관람객이 직접 체험하고 기념품으로 가져갈 수 있는 이벤트 공간도 충실하게 꾸려 호평을 받고 있다.하지만 내셔널 하우스의 역할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코리아 하우스엔 없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들이 있다. 대표적인 곳 중 하나가 체코 하우스다.체코-캐나다전이 열리기 하루 전인 16일, 이번 대회 스노보드 여자 크로스 동메달리스트인 에바 삼코바(25)가 체코 하우스를 방문했다. 삼코바는 체코 하우스에 모인 체코인들과 여러 방문객들 앞에서 동메달 세리머니를 펼치고 자신이 출전한 경기를 다시 지켜보며 수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았다.자신을 위해 준비한 영상편지를 보며 눈물을 글썽이던 삼코바는 체코 하우스에 마련된 기념 벽에 사인을 남겼고, 체코 대표 맥주인 필스너 우르켈 상품권을 받은 뒤 해당 회사의 모자를 쓰고 생맥주를 직접 따라주는 퍼포먼스도 펼쳤다. 메달리스트와 관중들이 하나가 되어 "나즈드라비(건배)"를 외치며 어깨동무를 하는 모습은 신선 그 자체였다.체코를 응원하기 위해 한국까지 자비로 여행을 왔다는 한 체코인은 "메달 색은 관계 없다. 삼코바는 우리의 자랑"이라며 "삼코바가 이곳에 와서 국민들이 자신을 열렬히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같아 기쁘다"고 감격 어린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코리아 하우스에선 찾아보기 힘든 '파티' 분위기였다.이처럼 내셔널 하우스는 자국 선수단을 응원하기 위해 올림픽 현장을 찾은 국민들을 하나로 모으는 '화합의 장' 역할도 한다. 네덜란드 하우스 역시 마찬가지다. 강릉 라카이 샌드파인 리조트 안에 설치된 네덜란드 하우스의 이름은 '홀랜드 하이네켄 하우스'로, 12.5유로(약 1만7000원)의 입장료를 내야하지만 티켓을 구하기 힘들 정도로 인기가 높다. 네덜란드 대표 맥주인 하이네켄과 각종 음식들을 맛볼 수 있는 건 물론이고, 밤마다 EDM의 나라답게 클럽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경기별 입장권을 구하지 못한 네덜란드인들은 네덜란드 하우스에 모여 자국 선수단을 응원하며 올림픽 분위기를 한껏 만끽 중이다.네덜란드 선수들 역시 먼 한국까지 찾아와 응원해주는 국민들을 위해 기꺼이 이곳을 찾고 있다. 네덜란드 인기 스포츠인 스피드스케이팅에선 남자 1500m 금메달리스트 키엘트 누이스(29) 은메달리스트 패트릭 로아스트(23) 등이 이곳을 방문해 사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축제를 즐기다 갔다. 네덜란드 관계자는 "여자 1500m 금메달·3000m 은메달리스트 이레인 뷔스트(32)는 새벽까지 화끈한 뒷풀이를 즐겼다"며 "최고 스타인 스벤 크라머(32)가 1만m에서 금메달을 땄다면 그날 네덜란드 하우스는 폭발했을 것"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빌렘 알렉산더 국왕 역시 선수들이 네덜란드 하우스를 찾을 때마다 밤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일일이 만나 인사를 나누며 격려한다고 한다.내셔널 하우스에 자국 선수들만 등장하는 건 아니다. 체코 하우스에는 캐나다 피겨스케이팅 페어 종목 은메달리스트 에릭 래드포드(33)가, 네덜란드 하우스엔 가나 최초의 스켈레톤 올림픽 대표인 아콰시 프림퐁(32)이 깜짝 등장해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이처럼 내셔널 하우스는 선수 보호, 국가 브랜드 홍보에 이어 전세계 교류의 장이자 자국민들을 위한 화합의 장까지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내셔널 하우스들의 '올림픽 장외전쟁'은 지금 이 순간에도 뜨겁게 펼쳐지는 중이다.강릉=김희선 기자 kim.heeseon@joins.com 2018.02.19 06:30
스포츠일반

'검은 탄환' 샤니 데이비스, 평창 올림픽 출전권 획득

지난 여름 한국에서 지옥훈련을 소화했던 '검은 탄환' 샤니 데이비스(36)가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했다.흑인 최초의 동계올림픽 개인 종목 금메달리스트 데이비스는 4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위스콘신 주 밀워키에서 치러진 미국 스피드스케이팅 대표 선발전 1000m에서 2위를 차지해 평창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데이비스는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쇼트트랙 선수로 출전한 뒤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는 당시 미국 대표팀 장권옥(현 한국체대 인터내셔널 아카데미 감독) 코치의 권유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한 뒤 크게 성공했다.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미국 대표팀으로 출전해 남자 1000m에서 금메달, 남자 15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겨울올림픽 개인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첫 흑인 선수다. 데이비스는 2010년 밴쿠버에서도 남자 1000m 금메달, 1500m 은메달을 목에 걸며 사상 최초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 동계올림픽 2연패 영광을 안았다. 데이비스는 이후 세월에 발목을 잡히며 기량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올림픽 3연패에 도전, 단 한 개의 메달도 목에 걸지 못했지만 은퇴 대신 훈련을 강행했다. 데이비스는 지난해 여름 은사인 장권옥 감독의 권유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오전에 서울 한국체대에서 한국의 초,중,고 학생 선수들과 함께 훈련했고, 오후엔 땡볕에서 쉬지 않고 체력 훈련에 매진했다. 철저한 '한국식 지옥훈련'. 생활도 '한국식'으로 맞춰다. 서울의 원룸에서 생활하며 정신을 단련했고, 식사도 주로 한식으로 했다. 그는 당시 소셜네트워크 계정을 통해 "한국에선 한국식으로 생활해야 한다"며 백반, 차돌박이, 배달 치킨 등 다양한 한국 음식을 올리기도 했다. 특히 그는 차돌박이를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라고 전했다. 이제 당당히 5번째 올림픽 출전 티켓을 딴 데이비스는 지옥훈련을 했던 한국 땅을 반년 만에 다시 찾는다. 한편 미국 피겨스케이팅 연맹은 미국 일부 정치인들의 2018 평창 겨울올림픽 불참 가능성 발언에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미국 피겨스케이팅 연맹 샘 옥시어 회장은 4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평창올림픽 미국 피겨 대표팀 선발전을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하면 대회 보이콧을 할 수 있다는 린지 그레이엄 미국 상원의원의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했다.옥시어 회장은 "정치인들은 좀 더 발언을 조심해야 한다"며 "올림픽을 정치적인 이슈로 몰면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올림픽은 정치의 테두리에 있지 않다"라며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의 재앙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옥시어 회장은 올림픽에 정치적 이슈를 끌고 오려는 정치인들을 비판하면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하기도 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핵 단추 크기를 놓고 싸우는 모습이 어처구니없다"고 말했다.기자회견에 참석한 데이비드 레이스 미 피겨 연맹 이사도 "정치인들의 발언은 누구에게도 도움되지 않는다"며 "우리는 (평창올림픽에) 참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한편 대북 강경파인 린지 그레이엄 미국 상원의원은 지난 1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신년사가 나온 뒤 트위터를 통해 "북한이 동계올림픽에 참가하면 우리는 안 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주장했다.미국올림픽위원회(USOC)도 보이콧은 없다는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USOC 대변인 마크 존스는 AP통신에 "우리는 완전한 대표팀을 꾸려 평창올림픽과 패럴림픽에 출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피주영 기자 2018.01.04 16:21
스포츠일반

김민선, 세계 주니어 新 쓰고도 인정받지 못한 사연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단거리 '차세대 유망주' 김민선(서문여고)이 세계 주니어 신기록을 쓰고도 인정받지 못했다.김민선은 지난달 22일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인터내셔널 대회 '폴 클래식' 여자 500m 경기에서 37초70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 2007년 이상화가 세운 세계 주니어 신기록(37초81)을 갈아치웠다.하지만 무려 10년 만에 새로 쓴 이 신기록은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ISU 규정상 이 기록이 세계신기록으로 공식 인정받으려면 김민선이 경기 당일 도핑 테스트를 통해 음성 판정을 받았어야 하는데, 대회 조직위원회가 이를 실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ISU 규정에 따르면 도핑검사 자격을 갖춘 사람이 대상 선수에게 검사 대상자가 됐음을 통보해야 한다. 그러나 대회 조직위원회로부터 도핑 대상자로 지정됐다는 통보가 없자 대표팀 감독이 직접 심판을 찾아가 김민선의 기록이 세계주니어기록에 해당하므로 도핑검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음에도 검사는 실시되지 않았다.대한빙상경기연맹은 이후 ISU에 "도핑검사를 실시하지 않은 것은 선수나 대표팀이 아닌 대회 조직위원회의 잘못인 만큼 세계신기록으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ISU는 "규정상 세계신기록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한편 ISU는 캐나다빙상연맹에 대회 조직위원회의 검사 미실시에 대해 엄중히 경고했으며, 조직위 측은 김민선과 대한빙상경기연맹에 사과 공문을 보내온 것으로 알려졌다.김희선 기자 kim.heeseon@joins.com 2017.10.11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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